베트남 전쟁에 점점 빠져든 이유_린든 B. 존슨 (36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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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순간 중 하나,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과 베트남전 확대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단순한 외교적 개입이 어떻게 전면적인 전쟁으로 번졌는지, 그리고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 케네디의 유산과 존슨의 딜레마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이후 부통령이던 린든 B. 존슨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죠. 당시 미국은 이미 베트남에 소수의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며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원’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냉전(COLD WAR)**이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공산주의가 동남아시아로 퍼지는 걸 막기 위한 이른바 **“도미노 이론(Domino Theory)”**이 존슨의 결정에 강한 영향을 줬습니다.

🧨 통킹만 사건 (1964)

모든 것이 달라진 건 1964년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이 일어나면서부터입니다. 북베트남이 미국 함정을 공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존슨 대통령은 이를 빌미로 **“통킹만 결의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킵니다.

이 결의안은 사실상 전쟁 선포 없이 대통령에게 군사행동의 전권을 부여하는 것이었죠. 이후 미군의 역할은 “고문단”에서 직접 전투부대 파병으로 전환됩니다.

🚁 전쟁의 확대 (1965~)

1965년, 존슨은 첫 지상군 파병을 승인합니다. 동시에 **“롤링 선더 작전(Operation Rolling Thunder)”**이라 불리는 북베트남에 대한 대규모 공습도 시작되죠. 이로써 미국은 본격적인 전쟁 상태에 돌입합니다.

파병 규모는 해마다 급격히 늘어나 1968년에는 50만 명 이상의 미군이 베트남에 주둔하게 돼요. 하지만 문제는 명확한 전략이나 출구 계획 없이 단지 “이기기 위해 더 많이 넣는” 방식이었단 점이죠.

📉 국민의 신뢰 추락

전쟁이 길어지고 희생이 늘어나자, 미국 내 반전 여론도 급속히 확산됩니다. TV와 언론 보도를 통해 전장의 참혹함이 그대로 중계되었고, 특히 젊은 세대와 지식인 중심으로 반전 운동이 거세집니다.

존슨은 “전쟁을 이기지도 못하고 끝내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죠. 결국 1968년, 그는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무대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린든 B. 존슨은 국내적으로는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정책을 추진하며 빈곤, 인종차별, 교육 문제에 개혁을 시도한 대통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의 그림자는 그의 업적을 가리고 말았죠.

그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명확한 전략 없이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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