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사나이_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아노프 (일명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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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러시아는 전쟁과 가난, 부패한 제정 체제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아노프, 우리가 흔히 아는 이름 레닌(Lenin)이다. 그는 러시아를 황제의 나라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로 탈바꿈시킨 혁명의 설계자였고,레닌은 1870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심비르스크(현재의 울리야놉스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식인 가정에서 성장했고, 어려서부터 뛰어난 학업 성취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삶을 뒤바꾼 결정적인 사건은 형 알렉산드르의 처형이었다. 알렉산드르는 차르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을 기도하다가 사형당했다. 이 사건은 어린 레닌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제국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심어줬다.

정치적 성장

레닌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칼 마르크스의 이론에 심취하게 된다. 그는 점차 혁명적 사상을 키워나갔고, 이후 사회민주노동당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03년 당이 **볼셰비키(강경파)**와 멘셰비키(온건파)로 갈라졌을 때, 레닌은 볼셰비키를 이끌며 혁명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망명과 사상

러시아 정부의 탄압으로 레닌은 오랜 기간 유럽 여러 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스위스, 영국, 독일 등지에서 그는 끊임없이 글을 쓰고 혁명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 시기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당의 선진성', '제국주의론' 등 중요한 개념들을 정립했다. 그에게 있어서 혁명은 단순한 민중 봉기가 아니라, 강력한 지도력과 조직이 이끄는 과학적 과정이었다.

러시아 혁명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러시아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자, 레닌은 기회를 틈타 독일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로 귀국한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혁명(구력 10월, 신력으로는 11월)에서 볼셰비키는 무장 봉기로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고,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선언한다.이것이 바로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시작이었다.

권력을 쥐고 변화의 바람~

혁명 이후, 레닌은 소비에트 정부의 초대 수상이자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 군림한다. 그는 전쟁, 기근, 반란 등 수많은 위기를 맞닥뜨리지만, 신경제정책(NEP) 도입 등으로 체제를 어느 정도 안정시킨,하지만 그의 통치는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반대파에 대한 탄압, 언론과 정치의 자유 제한, 강제노동 수용소의 시작 등은 이후 스탈린 시대의 전조가 되기도 했다.

레닌의 죽음

레닌은 1922년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1924년 1월, 53세의 나이로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그의 죽음 이후 권력의 공백을 놓고 스탈린과 트로츠키 간의 권력투쟁이 시작되며, 소련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레닌의 시신은 미라로 처리되어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 묘에 안치되어 있으며, 그의 이름은 한때 도시(레닌그라드), 거리, 학교 등 다양한 곳에 붙여지며 신격화되었다.

레닌은 혁명의 영웅인가, 아니면 독재의 씨앗을 뿌린 인물인가? 그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그는 20세기 역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 중 하나이며, 냉전의 서막을 연 결정적인 존재였다는 점이다.

그의 혁명은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그의 사상과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도,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억압이 태동했다는 아이러니 속에 레닌이라는 인물은 여전히 현대사에서 논쟁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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